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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훈은 선생님이, 사훈은 대표님이 정하는 줄 알았지
새 학기가 시작되면 급훈을 정한다.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 가득한 서먹한 분위기 탓에, 결국 담임 선생님의 선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높은 확률로 이미 벽에 걸려 있는 문구를 그대로 재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급훈은 정하는 게 아니라, '정해지는' 것에 가깝다. 가훈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 소개하기’ 같은 숙제를 만나면 부모님께 가훈을 여쭤보거나, 부모님께서 멋진 말로 정해주시길 기다리면 그만이다.
“우리 회사의 사훈을 정해봅시다.”
이 제안에 우리는 대표님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나 이걸 어쩌나. 대표님은 우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하는 일도 바빠 죽겠는데 사훈까지 정해야 한다니!
우리는 노련한 시선 회피 기술을 발휘하며 두 번 정도는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대표님이 아니다. 그 사이 ‘사훈’은 ‘일하는 방식’으로 텍갈이되어 돌아왔다. 창립 멤버로서 우리가 일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설득에 결국 본격적인 '팀 문화 빌딩'이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님은 이 문화로 본인이 역공격받을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거다.)
“인사를 생활화합시다.”, “회의가 너무 길어요.”, “질문공격을 멈춰주세요” 등등 의견이 나올수록 이게 일하는 원칙에 대한 건지, 손병호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각자 생각하는 '좋은 문화'의 파편들만 무성할 뿐, 기준점이 없으니 배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됐다.
대감댁 구경하기
우리는 먼저 다른 회사들의 일하는 방식을 찾아보았다. 소위 ‘대감댁’이라 불리는 선진 기업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물론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복사할 수는 없지만, 선택하고 걸러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선명해졌다.
협업에 대한 마음가짐: 자율과 책임
우리 팀은 함께 일하기 위해 모인 동료로서, 협업에 대한 마음 가짐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은 규율과 자율의 균형점에서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달의민족 | 규율 위의 자율 |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와 같은 최소한의 약속을 통한 자율 극대화 |
토스 | 자율과 책임 | 정보의 투명한 공유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결정권 존중 |
당근 | 신뢰와 존중 기반의 자율 | 성숙한 구성원에 대한 신뢰로 자율적인 조직 문화 구축 |
넷플릭스 | Freedom & Responsibility | 규칙 없음을 지향하되, 충분한 '맥락(Context)' 공유를 전제함 |
본질과 혁신: 문제를 바라보는 힘
기술로 성장을 이끄는 회사들은 올바른 사고방식을 공유하며 혁신을 꾀한다.
테슬라 | First Principles Thinking 제 1원칙 사고 | 관행을 무시하고 본질(제1원칙)부터 다시 생각 |
애플 | Think Different 다르게 생각하라 | 남과 다르게 생각하기, 극도의 단순함과 디테일 |
카카오 |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말자 | 기존의 틀을 깨는 수평적 토론과 과감한 시도 |
현대자동차 | 도전적 실행 (현대 웨이) | 끝없는 도전과 수평적 문화를 통한 혁신 유도 |
속도와 성장: 빠른 실행과 학습
속도와 성장을 위한 태도도 필수적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넘어, 그 경험을 팀 전체가 공유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메타 | Move Fast 빠르게 움직여라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빠른 배포와 실행 |
마이크로소프트 | Growth Mindset 성장 마인드셋 | 실패를 배움으로 전환하는 끊임없는 학습 |
삼성전자 | 실무/현장 중심의 빠른 실행 | 현장에서 답을 찾고 변화를 선점하는 속도감 |
구글 | Do the right thing 옳은 일을 하라 | 심리적 안전감을 바탕으로 한 10배 성장 |
사용자 신뢰: 원칙과 신뢰
동료에 대한 신뢰만큼 중요한 것이 사용자에 대한 신뢰다. “사용자에게 집중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말처럼, 결국 답은 사용자에게 있다.
아마존 | Customer Obsession 고객 집착 | 고객에게 집착하는 16가지 리더십 원칙 |
네이버 | 주도성과 사용자 집중 | 사용자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연결과 공유 |
LG그룹 | 정도경영 | 원칙을 지키는 정공법과 고객 가치 창조 |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제법 정성이 들어갔다. 잘하고 있는 것은 유지하고, 본받을 점은 흡수했다. 그리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한 가지 가치를 더했다. 그건 바로 ‘변화’다. 일하는 방식은 단순히 지켜야 할 약속을 넘어, 우리 스스로를 개선하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일하는 방식이 완성되었다.
<팀인팩트가 일하는 방식 v1.0>
→ 심리적 안전감
무조건적인 친절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넷플릭스·토스식 소통
→ 지식 자산화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자산으로 만드는 아마존·구글의 일하는 방식
→ 성장 마인드셋
평가 기간에만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MS처럼 매일의 상호작용을 통해 동료의 성장을 돕는 문화
→ 주도적 해결
모르는 걸 묻는 용기를 장려하되, 메타(Meta)처럼 스스로 답을 찾는 노력을 통해 질문의 질을 높이는 태도
→ 시간의 가중치
애플의 '핵심 인원만 참석'이나 아마존의 '조용한 회의'처럼 동료의 몰입 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문화
구성원 모두에게 수정 권한 허용
이 다섯 가지 원칙은 우리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발판이다. 직접 우리 손으로 만들며 깨달은 것은, 이 원칙이 결코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최선일지라도 팀이 커지거나 상황이 바뀌면 이 약속들은 언제든 '작아진 옷'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내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 정해준 문장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지켜야 할 것은 벼리고, 낡은 것은 과감히 수정하는 ‘개정의 과정’ 그 자체가 진짜 우리의 문화여야 한다.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앞으로도 자주 고쳐 써질 예정이다. 구성원 누구나 "이건 이제 우리랑 안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고, 새로운 약속을 제안할 수 있는 분위기. 그런 변화의 움직임이야말로 우리 팀이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우리가 세운 이 원칙들이 훗날 더 멋진 문장들로 대체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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